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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함께 일했던 회계법인의 회계사중 진성 금수저에 색누리당을 지지하는 보수파 회계사가 있었다, 이 회계사가 잘못 알고 있는 박정희 시대 및 근현대사가 잘 정리되어 있는 -청년을 위한 한국 현대사-와 님 웨일즈가 쓴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김산의 일생을 그린 -아리랑-을 난 항상 적극 추천해주며, 그 회계법인을 관두기 전에 내 책을 빌려주었다.
 
 
근데, 책을 빌려주고 나서 잊고 완전 있었는데 일년이 넘어서야 연락이 와서는, 이제 다 읽었다며 돌려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책 속에 이름은 누구에요? 라고 묻길래, 에? 책속에 이름이요? 우리 아빠가 사준 책인데 누가 낙서했나요? 라면서 난 그냥 웃어 넘기며 받았다. 근데 그 회계사왈 혹시 첫사랑? 이러면서 놀리는 것이다. 무슨 얼어죽을 첫사랑이요 ㅋㅋㅋ
 
 
책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와 펴보니 정말 어떤 사람의 이름과 나의 미래를 축복해는 짧은 문구와 함께 날짜가 선명히 써져 있었다.
 
 
어래?
 
 
난 어린시절부터 아빠로부터 역사 교육하나는 철저히 받아왔었고,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근현대사도 아빠와 아빠가 사주신 책들을 통해 배워왔다. 그래서 당연이 이 두권의 책이 아빠가 사준책이라고 그동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근데.. 책 첫장에 써진 이름을 보는 순간, 소름이 끼치고 말았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 이때까지 전혀 기억하고 있지 않았던 그 오래전의 기억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오빠는 서울대생이었고, 나는 우리나라 최고 지성인 서울대를 다니는 그 오빠가 그저 태양과 같은 존재로만 느껴졌다. 오빠는 어느날 서울대로 나를 불러 학교를 구경시켜주고 도서관에 갔다가, 지금도 그렇게 불리는 지 모르겠지만, 녹두거리에 데리고 가서 맛난것도 사주시고.. 서점에 가서 이 두권의 책을 사주시며 즉석에서 날짜와 이름과 짧은 축복의 글을 적어주며, 잘 읽어봐라고 주시는 것이었다
 
 
 
하늘과 태양과 같은 존재로부터 받은 책이라, 너무 황송하고 기뻐 오빠랑 헤어지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몰두해 읽었던 기억이 너무나 오랜만에 떠오른 것이었다.
그당시 오빠는 금수저 집안의 자식인데도 학생운동에 관심이 많았으며 항상 불평등을 조장하는 이 사회의 기득권을 비판하며, 자신이 학교를 졸업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원하셨다, 그런 오빠가 어찌 하늘과 태양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으랴
 
 
 
 
오빠는 모그룹에 취업을 했고 난 K그룹에 입사했다. 졸업하고 나서도 연락은 계속 주고 받으며, 오빠가 나와라 할때마다 나가면, 클래식 공연이라든지 뮤지컬 공연을 함께 보자고 항상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난 그저 태양과 같은 오빠가 나와 함께 다녀주는 사실만으로 감격했었던 어린아이와 같았다
 
 
어느날, 여느날처럼 오빠가 클래식 공연 보러갈거니까 퇴근후 예쁘게 입고 나와 하는 것이었다. 사회인이 되고 나서는 정장 입고 다니니까, 맨날 입는 정장 생각해서 정장 입고 갈게 했는데, 좀더 예쁘게라고 주문을 넣으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날의 공연이 드레스 코드인가보다 하고 난 롱 드레스를 입고 갔었다 ㅋㅋ
 
 
오빠랑 만나서 공연장의 VIP 석 전용(?)엘레베이터를 타고 공연장으로 올라가는데 엘레베이터 안에는 정장 입은 나이드신 남자 몇분이 있었다. (내기억으론 2-3분정도) 오빠는 그분들에게 인사하며, 제 여친입니다 라고 소개하는 것이었다. 순간 난 너무 당황해서, 한번도 오빠랑 연인관계라곤 생각해본적도 없고.. 태양과 같은 존재를 남친 삼고 싶다는 생각조차 못했던 사람이었던지라.. 하지만 순간 삘~~이오는게, 회사 상사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오빠를 당황하게 하면 안될 것 같아, 다소곳하게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하고 말았다.

 

그날 공연 보는내내 난 너무 불편해서.. 공연 끝나고 오빠가 집까지 데려다 줄때까지 말한마디 안했다. 그런 나에게 왜 말한마디 없냐고 묻는 것 대신, 수퍼에서 내가 좋아하는 알수크림을 사주며. 이것 먹으면서 좀 걷자.. 라는 오빠와 함께 밤에 동네 열바퀴는 돈것 같다. 그리고 말없는 내게 아무 말없이 집앞에 데려다 주시고 가셨다
 
집에 돌아온 후 곰곰히 오빠가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서, 나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길, 아마도 오빠가 나처럼 결혼 독촉을 많이 받아서 날 좀 여친대용(?)으로 사용하셨다보다라고 결론 내리고 맘편하게 갖기로 했다. 그후 오빠와 만남은 또 여느때와 다름없이 태양과 같은 존재를 만나는 그 느낌 그대로 유지되었다.
 
 
 
어느날 오빠가 해외 출장을 다녀와서, 넌 한국에서 계속 살거니? 묻는 것이었다. 아뇨 나도 나가고 싶어요. 기회와 능력이 된다면요. 대답했다 그랬더니 오빠가 함께 캐나다로 갈까? 라고 말씀하셔서, 왜 또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던 어렸던 나 ㅠㅠㅠ
 
 
오빠는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내가 답답했는지, 너한테 프로포즈 하는거야라며 돌직구를 날렸다. 허거걱, 태양과 같은 존재와 결혼이라고? 머리속이 갑자기 어리지워지며, 말도 안돼! 오빠, 오빠와 난 오빠와 동생 관계일 뿐이에요 라고 말씀드리니, 
 
 
 
넌 왜 내 마음을 느끼지 못하는 거니? (정확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이런 뉘앙스로 말씀하셨다)
 
 
 
그 후 갑자기 태양과 같던 오빠가 무서워졌다. 그래서 오빠의 연락도 일부러 피하고, 오빠의 마음이 진정되어 다시 예전같이 그저 친한 오빠와 동생으로 돌아가기만을 기다렸다. 
 
 
 
어느날, 오빠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 해외 지사로 가, 가기전에 한번만 얼굴 보여줘 라는 것이었다. 눈 앞이 깜깜해졌다, 이제 뮤지컬이고 클래식이며 함께 공연 보는 것은 못하는 것인가.. ㅠㅠ 그래 그 순간에도 난, 나의 공연 보는 즐거움이 사라지는 걱정만 했던 것이었다.
 
 
 
오빠를 만났다
좀 야윈듯한 느낌이 들어 짠했다
너 괴롭히지 않을게, 해외 지사로 가면 당분간 한국에 못와
잘 지내고 건강하렴
오빠랑 그게 마지막이었다
 
 
 
오빠는 캐나다로 발령나 갔고, 한다리 건너서 들리는 소문엔 집안에서 원하는 신부와 결혼했다고 한다
 
 
 
그 기억이..
이제야.. 났다..
 
 
 
보수파 회계사의 잘못된 역사관을 깨우쳐주려 책 빌려줬다가, 나도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울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오빠를 사랑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때 난 정말 어렸었기에,
근데 마치 러브레터의 여주인공이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기억을 어느 책 한권을 통해 떠올린 것처럼, 나도 아주 오랜전의, 정말 정말 기억에서 잊고 있었던 잃어버린 시간을 떠올리며, 러브레터의 여주인공처럼 콧등 짠한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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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재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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