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도록 하얀 눈으로 가득한 영화 러브레터를 본 건
겨울이 아닌 태양의 뜨거운 입김으로 가득한 여름날 이었다
나의 두근거림을 들킬까봐,
숨죽인 채, 보았다
그리고 기억속에 묻어있던 추억을 떠올리게 되었고,
난 길고 긴 사연의 편지를 보냈다, 그 영화를 함께 본 그 사람에게.
루이제 린저의 감성으로 물들어
하루하루가 바싹바싹 입이 마를 정도로
잔인한 "사춘기" 시절을 통과하고 있었던 중학생때
새로 부임한 미술선생님은, 남선생님이었다
획일적인 일체의 것을 거부하시며 "세상의 모든 것에 호기심"으로 가득한 여중학생들에게
널뛰는 감성 그대로의 그림세상을 보여주셨고
80년대 반공을 외치던 시절의, 그런 미술선생님의 파격적인 수업은, 여리고 순수했던 여중학생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그리고 미술선생님은 단숨에 학교에서 제일 인기많은 선생님이 되셨다
교생선생님들이 실습을 나왔던 5월
실습 마지막날 나는 실습기간 동안 날 많이 챙겨주셨던 교생선생님의 선물을 사갔다
그런데 교실에 들어와 확인해보니 내가 고른 선물이 잘못 포장되어 있었고 당황한 나는 얼른 출입증 쪽지를 위조해 (우리때는 수업시간 이외에 학교로 나갈려면 담임선생님의 확인도장이 찍힌 쪽지를 가지고 나가야 했는데, 그당시 반에서 서기를 하고 있던 나는 담임선생님의 도장을 가지고 있었고, 바로 출입허가 쪽지에 담임선생님의 도장을 찍어 나갔다)
학교앞 팬시점에서 내 선물이 잘 못 되었음을 말하고 교환해 다시 포장해 학교로 들어가던 중
그당시, 미술선생님은 학교 지도부 담당 교사였는데
등교시간 점검을 마치고 지도부애들과 함께 교문 앞에 계셨다
난 미술선생님께 묵례로 인사드리고 서둘러 학교로 들어가려 하던차 경비 아저씨에게 잠시 붙들려 출입쪽지 여부를 체크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등뒤로 들리던 미술선생님의 목소리
"재피야, 이것 먹을래?" 하시면서 내게 지도부 애들이 먹고 있는 것과 같은 카페라떼 아이스크림을 직접 주시는게 아닌가
그리고, 미술선생님께서는 나의 출입쪽지를 보고
당신이 허락한거라면서 경비아저씨에게 그냥 통과시켜주라고 말씀하셨다
잠시 지도부애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미술선생님께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아이스크림이 녹을까봐 교실까지 뒤도 안보고 뛰어갔었다
교실에 들어가니 얼굴 빨간 내게 애들은 손에 뭐 들고 있냐고 물었고
난 아이스크림을 들어올려 "미술 선생님께서 주셨어..."라고
반 아이들이 술렁거렸다
말도안돼, 왜 너한테만!!
학교에서 제일 인기많은 미술선생님께서 나에게 직접 건내주셨던 카페라떼 아이스크림이 떠오른건, 영화 러브레터를 다 보고 난 뒤, 이츠키가 또다른 이츠키의 첫사랑임을 깨달았을 때였었다
기억하지도 못하고 있었던 아련한 기억
그 기억이 떠올라
난, 한참을 울었었다
https://youtu.be/yK6SzjLpLCY?si=ZkLqal2jQGBsSLKh
2024년 겨울에 러브레터의 주인공역을 맡았던, 나카야마 미호상의 부고 소식은 어느 여름날로 날 되돌려 놓았고, 또다시 목놓아 울어버렸다.
영화 러브레터 30주년 기념을 불과 한달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나카야마 미호상이 생전에 참말로 아련하게 불렀던 노래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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